1702년
비고만 해전
비고 만 해전(혹은 란데 전투)는 루크(Rooke)제독과 필립 반 알몬드(Philips van Almonde)휘하의 영국-네덜란드 함대가 데 루스레(de Rousselet) 제독과, 마누엘 데 벨라스코(Manuel de Velasco) 휘하의 프랑스-스페인 함대를 1702년 10월 23일 스페인의 갈리시아(Galicia)의 비고(Vigo) 만(灣)에서 공격, 격파한 에스파냐 왕위 계승 전쟁의 전투 중 하나다.
1701년 – 1714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에서 유럽의 주요 열강들은 힘을 합쳐 프랑스가 스페인의 왕위를 계승하려는 것을 막아 유럽의 힘의 균형을 바꾸어 놓았다. 관련된 분쟁으로 헝가리의 라코치 독립 전쟁, 프랑스 남부의 세벤 전쟁, 북아메리카의 앤 여왕 전쟁, 인도 식민지의 소규모 분쟁 등이 있다. 이 전쟁에서 빌라르 공작, 스튜어트 왕가의 지지자 베릭 공작, 말버러 공작, 사부아 공자 외젠 등 뛰어난 장군들의 군사적 지도력이 두드러졌다.
1702년
비고 만 해전(혹은 란데 전투)는 루크(Rooke)제독과 필립 반 알몬드(Philips van Almonde)휘하의 영국-네덜란드 함대가 데 루스레(de Rousselet) 제독과, 마누엘 데 벨라스코(Manuel de Velasco) 휘하의 프랑스-스페인 함대를 1702년 10월 23일 스페인의 갈리시아(Galicia)의 비고(Vigo) 만(灣)에서 공격, 격파한 에스파냐 왕위 계승 전쟁의 전투 중 하나다.
1701년
카르피 전투는 1701년 여름에 연속된 책략의 일환으로 일어난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중 첫 번째 전투로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사이에서 1701년 7월 9일 일어났다.
1702년
크레모나 전투는 1702년 2월 1일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서 벌어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전투 중 하나이다.
1701년
키아리 전투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기간중에 벌어졌던 전투 중 하나로 1701년 9월 1일 벌어졌다. 이 전투는 사보이 공작 외젠(Prince Eugene of Savoy)이 이탈리아 반도에서 밀라노 공국을 좌지우지하고 있던 스페인에 대한 공격의 일부였다. 7월, 카르피에서 패배함에 따라 새로운 프랑스 사령관 빌레루아(Villeroi)가 황제군을 격파하고 그들을 몰아내라는 루이 14세의 명을 받고 이탈리아에 부임하였다. 그러나 적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공격해올 것임을 예상한 외젠은 키아리의 요새를 참호로 에워싸고 대기하고 있었다. 전투 후반부 몇 시간 동안 오스트리아군은 프랑스, 스페인군의 중무장 기병대를 괴롭혔고, 결국 압도적인 승리를 기록할 수 있었다. 빌레루아는 11월 오글리오(Oglio)강을 건너 밀라노로 퇴각할 수밖에 없었고, 외젠은 만토바 공국(Duchy of Mantua)의 대부분을 점령할 수 있었다.
1702년
루차라 전투는 이탈리아 루차라 근처에서 1702년 8월 15일 벌어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전투 중 하나이다.
1702년
프리들링겐 전투는 1702년에 벌어진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 사이에 벌어진 전투이다. 황제군은 바덴-바덴 마르그레브 루트비히 빌헬름(Louis William, Margrave of Baden-Baden)이 지휘했고, 반면에 프랑스군은 클로드 루이 엑토르 드 빌라르(Claude Louis Hector de Villars)가 지휘했다. 전투는 프랑스군이 승리했다.
1702년
카디스 전투는 1702년 영국, 네덜란드 함대와 육군에 의해 스페인의 도시 카디스가 포위된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전투 중 하나이다. 이들 영국, 네덜란드군은 1702년 8월 23일 카디스에 도착하여 약 한달간 포위를 하였다. 도시는 겨우 500이 되지 않는 병사와 비야다리아스 후작 프란시스코 카스티요 파하르도(Marquis of Villadarias, Francisco Castillo Fajardo)의해 성공적으로 지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