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 1996년
1991년 – 2001년
유고슬라비아 전쟁은 1991년부터 2001년까지 구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이었던 지역에서 발생한 일련의 분리되었지만 서로 연관된 여러 민족 분쟁, 독립 전쟁, 분란전이다. 전쟁은 1991년 중반부터 시작된 유고슬라비아의 붕괴로 이어졌고, 이전 유고슬라비아를 구성했던 6개의 공화국에 해당하는 6개의 독립국, 즉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마케도니아(현재 북마케도니아로 불림)로 분열되었다. SFR 유고슬라비아의 구성 공화국들은 민족주의의 고조로 독립을 선언했다. 새로운 국가에서 민족 소수자 간의 미해결된 긴장은 전쟁으로 이어졌다. 대부분의 분쟁은 새로운 국가의 완전한 국제적 승인을 포함하는 평화 협정을 통해 끝났지만, 엄청난 수의 사망자와 이 지역에 심각한 경제적 피해를 초래했다.
1992년 – 1996년
1991년
부코바르 전투(크로아티아어: Bitka za Vukovar, 세르보크로아트어: Bitka za Vukovar)는 1991년 8월에서 11월 사이 크로아티아 동부 부코바르에서 일어난 유고슬라비아 인민군(JNA) 및 기타 여러 세르비아인계 준군사와 크로아티아 간에 87일간 이뤄진 포위전이다.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 이전에는 바로크 건축 시절의 구도심에서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기타 민족이 섞여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유고슬라비아의 해체가 점차 대두되면서 세르비아의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와 크로아티아의 대통령 프라뇨 투지만 사이의 민족감정을 이용한 정치가 충돌하기 시작했다. 1990년에는 세르비아 정부와 준군사의 지원을 받아 크로아티아 내 세르비아계가 다수인 지역에서 세르비아계의 무력 준동이 시작되었다.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은 반란에 호응하여 크로아티아에 개입하기 시작해 1991년 5월에는 크로아티아 동부 지역인 슬라보니아에서 군사 분쟁이 시작되었다. 8월이 되면 인민군이 부코바르를 포함한 슬라보니아 전역의 크로아티아 영토에서 대규모 공세를 펼치기 시작한다.
1991년 – 1992년
두브로브니크 포위전(세르보크로아트어: opsada Dubrovnika 옵사다 두브로브니카[*])는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 기간 두브로브니크 지역을 두고 유고슬라비아 인민군(JNA)과 크로아티아군 사이에 발생한 포위전이다. 1991년 10월 1일 진격을 시작한 유고 인민군은 10월 말까지 아드리아해 연안 펠레샤츠반도와 프레블라카반도 사이 거의 모든 땅을 점령했으며 크로아티아에게 남은 지역은 두브로브니크 인근 지역이었다. 이후 유고슬라비아 해군의 봉쇄를 동반한 두브로브니크 포위전이 시작되었다. 유고 인민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를 포함해 시가지 전역에 포격을 날렸으며 이는 1991년 12월 6일 극에 달했다. 이 포격은 국제적인 비판을 일으켰고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와 유고슬라비아를 향한 외교적, 경제적 고립과 함께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데 큰 기여를 한 사건으로 마감했다. 1992년 5월 유고 인민군은 일부 지역에서는 해안에서 채 1 km도 떨어지지 않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로 후퇴해 새로 수립된 스릅스카 공화국군(VRS)에게 무기를 넘겨주었다. 이 시기 크로아티아 육군(HV)은 서쪽에서 공세를 펼쳐 두브로브니크의 크로아티아 및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지역에서 유고 인민군과 스릅스카 공화국군을 밀어내고 5월 말에는 도시를 지키는 크로아티아 육군과 합세해 포위망을 풀어냈다. 이후 두브로브니크 동쪽에서 벌어진 크로아티아군과 유고슬라비아군 간의 전투는 점차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1991년
1991년 5월 2일 보로보셀로 전투(Battle of Borovo Selo), 크로아티아어로 보로보셀로 학살(크로아티아어: Pokolj u Borovom Selu), 세르비아어로 보로보셀로 사건(세르비아어: Инцидент у Боровом Селу)은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 초기에 일어난 무력 분쟁 사건 중 하나이다. 이 충돌은 3월 이후 파크라츠, 플리트비체 호수에서의 무장 충돌에 이어서 수개월 간 고조된 인종간 갈등, 폭력 등이 벌어저 일어난 사건이다. 부코바르 바로 북쪽에 있는 세르브인 다수 거주 마을인 보로보에서 양 측의 충돌이 일어난 것은 마을에 걸어져 있는 유고슬라비아의 국기를 크로아티아의 국기로 교체하러는 시도 때문이었다. 크로아티아 경찰관 4명이 독단적으로 이런 시도를 한 결과 세르브계 크로아티아인 민병대에게 경찰관 2명이 붙잡혔다. 크로아티아 정부는 포로 구출을 위해 추가 경찰을 파견하였으며 경찰은 매복 공격을 감행했다. 유고슬라비아 인민군(JNA)이 개입해 충돌이 끝나기 전까지 크로아티아 경찰 12명과 세르브인 민병대원 1명이 사망하였다.
1991년
막사 전투(크로아티아어: Bitka za vojarne 비트카 자 보야르네)는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 기간인 1991년 중후반 크로아티아 국가방위군(ZNG, 이후 크로아티아 육군이 됨)과 크로아티아 경찰, 유고슬라비아 인민군(JNA) 사이에서 벌어진 일련의 교전이다. 전투는 크로아티아 전역의 수많은 유고 인민군 막사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며 크로아티아군이 유고 인민군 막사, 무기고, 기타 시설을 봉쇄하면서 시작되었다. 9월 14일 대대적으로 시작된 전투 목표는 크로아티아가 자국군이 점령한 영토 내 유고 인민군 진지를 무력화하고 장비가 열약한 크로아티아군을 위한 무기와 탄약 보급을 확보하는 것이다.
1991년 – 1992년
오시예크 전투(세르보크로아트어: Bitka za Osijek 비트카 자 오시예크[*])는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 기간 1991년 8월부터 1992년 6월까지 유고슬라비아 인민군(JNA)이 크로아티아의 도시 오시예크에 지속적으로 포격한 교전이다. 포격은 1991년 11월에서 12월에 최고조에 달했다가 1992년 양 교전국이 밴스 계획을 받아들이면서 포격이 점차 감소했다. 하지만 도시 내 목표물을 향한 공습과 인민군 전차 및 보병의 공격이 이어지면서 800명이 사망하고 도시 인구 상당수가 오시예크에서 탈출했다. 크로아티아의 소식통에 따르면 전쟁 기간 오시예크에 포탄 6천발을 포격했다고 추정된다.
1992년 – 1993년
모스타르 포위전은 보스니아 전쟁 중 1992년에 처음 발생했으며, 이후 1993년부터 1994년까지 다시 벌어진 전투이다. 처음에는 1992년 4월부터 6월까지 지속되었으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후 크로아티아 방위평의회(HVO)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군(ARBiH)이 세르비아인 중심의 유고슬라비아 인민군(JNA)에 맞서 싸웠다. 이 시기는 크로아티아 육군(HV)과 HVO가 개시한 자칼 작전이 성공한 후인 1992년 6월에 끝났다. 첫 포위전 이후 모스타르 주민 약 90,000명이 피난했고 수많은 종교 건물, 문화 시설 및 다리가 손상되거나 파괴되었다.
1992년
Operation Corridor 92 was the largest operation conducted during the Bosnian War by the Army of Republika Srpska (VRS) against the forces of the Croatian Defence Council (HVO) and the Croatian Army (HV) in the Bosanska Posavina region of northern Bosnia and Herzegovina between 24 June and 6 October 1992. The objective of the offensive was to re-establish a road link between the city of Banja Luka in the west of the country and the eastern parts of the territory controlled by the Bosnian Serbs. The offensive was prompted by the capture of Derventa by the HV and the HVO – a move that blocked the single overland road between the VRS-controlled territories.
1991년
1992년 – 1995년
1992년
1992년
브르바스 '92 작전(세르비아어: Операција Врбас '92 오페라치야 브르바스 '92)은 보스니아 전쟁 시기인 1992년 6월에서 10월 사이 스릅스카 공화국군(VRS)이 수행한 군사 공격 작전이다. 작전 목표는 크로아티아 방위평의회(HVO)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군(ABiH)이 점령한 보스니아 중부의 야이체 주변 지역의 돌출부를 제압, 점령하는 것이었다. 전투 정도는 상당히 다양했으며 몇 차례의 주요 스릅스카 공화국군의 공세와 중간중간 상대적인 소강상태가 번갈아가며 이어졌다. 1992년 10월 29일 스릅스카 공화국군은 야이체를 함락시켰으며 마을이 점령된 후 안에 있는 모든 모스크와 로마카톨릭 교회 건물이 파괴되었다.
1992년
자칼 작전(크로아티아어: Operacija Čagalj) 또는 6월의 새벽 작전(크로아티아어: Operacija Lipanjske zore)은 1992년 6월 7일부터 26일까지 보스니아 전쟁 중에 치러진 공세로, 크로아티아 육군(HV)과 크로아티아 방위평의회(HVO) 연합군이 스릅스카 공화국군(VRS)에 맞서 싸웠다. 이 공세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주둔하던 유고슬라비아 인민군(JNA) 부대로부터 1992년 5월에 결성된 세르브계 보스니아인 군대인 VRS를 상대로 크로아티아 측이 감행한 선제 타격이다. HV는 1992년 4월과 5월에 진행된 JNA의 공세 작전으로 쿠프레스 점령과 모스타르 남쪽 네레트바강 계곡 대부분의 점령이 이루어지자, 이것이 크로아티아의 플로체항 점령이나 스플리트를 위협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러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크로아티아 지도부는 장군 얀코 보베트코의 지휘 아래 HV를 자칼 작전이 수행될 지역을 포함한 "남부 전선"에 배치했다.
1991년
벨로바르 막사 포위전, 작전명 빌로고라 작전(크로아티아어: Operacija Bilogora)은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 기간 유고슬라비아 인민군 제32(바라주딘)군단 산하 벨로바르 도심 및 주변의 유고 인민군 막사와 기타 군 시설을 봉쇄하고 점령한 전투이다. 1991년 9월 14일 크로아티아 내 유고 인민군 군 시설에 대한 전면 봉쇄 명령이 내려졌고, 9월 29일 크로아티아군이 인민군의 모든 막사를 점령할 때까지 봉쇄가 이어졌다. 벨로바르 막사 점령은 제32군단 병력 대부분이 항복한지 일주일 후에 일어났다. 이 전투는 크로아티아군이 크로아티아 내 병영에 주둔한 유고 인민군 부대를 고립시키거나 막사를 점령해 초기 크로아티아군에게 필요한 무기를 얻기 위한 시도로 시작된 막사 전투의 한 단락이다.
1991년
스와치-10 작전 또는 옥토스-10 작전(크로아티아어: Operacija Otkos-10)은 크로아티아 육군(Hrvatska vojska, HV)이 서슬라보니아의 빌로고라산에 주둔한 서슬라보니아 세르브인 자치주 영토방위군을 상대로 감행한 군사 공세이다. 1991년 10월 31일부터 11월 4일까지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 중에 발생한 이 작전은 크로아티아의 승리로 끝났고, 이 성공으로 11월 말에서 12월까지 파푸크산에서 이어진 파푸크-91 작전으로 크로아티아군의 추가 진격이 가능해졌다. 연말까지 HV는 파푸크를 장악하여 동슬라보니아와 나머지 크로아티아 사이의 보급로를 확보했다.
1992년
허리케인-91 작전(Operacija Orkan-91)은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 중 슬라보니아 서부 지역의 사바강 계곡에서 크로아티아 육군(HV)이 유고슬라비아 인민군(JNA) 및 서슬라보니아 세르브인 자치주 영토방위군을 상대로 벌인 군사 공세이다. 이 작전은 1991년 10월 29일에 시작되어 밴스 계획을 이행하기 위한 전국적인 정전 협정이 체결된 1992년 1월 3일에 종료되었다. 이 공세는 며칠 간격으로 해당 지역 북부에서 서슬라보니아 세르브인 자치주를 향해 시작된 다른 두 차례의 HV 공세와 연계하여 지역을 탈환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1992년
쿠프레스 전투(세르보크로아트어: Bitka za Kupres / Битка за Купрес)는 보스니아 전쟁의 전투로, 1992년 4월 3일부터 11일까지 쿠프레스 고원에서 크로아티아 육군(HV) 부대의 지원을 받는 크로아트계 보스니아인 크로아티아 방위군(HOS)과 세르브계 보스니아인 영토방위군의 증원을 받은 유고슬라비아 인민군(JNA) 사이에서 벌어졌다. 4월 8일 전투 도중 크로아트계 보스니아인 TO는 크로아티아 방위평의회(HVO)로 재편되었다. 이 전투의 목적은 주요 보급로인 전략적 요충지 쿠프레스 고원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1992년 – 1995년
1991년
고스피치 전투(세르비아어: Битка за Госпић, 크로아티아어: Bitka za Gospić)는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 기간인 1991년 8월 29일부터 9월 22일까지 크로아티아의 고스피치에서 일어난 전투이다. 고스피치 전투에서 마을 내 5개 막사에 주둔한 유고슬라비아 인민군과 준군사조직인 세르비아 방위군이 크로아티아 국가방위군(ZNG), 고스피치 주둔 경찰, 크로아티아 내 다른 지역에서 증원된 경찰과 충돌했다. 포병 지원을 받은 유고 인민군이 장악한 고스피치 동부 지역의 전투는 대체로 교착 상태에 있었으나, 9월 14일 크로아티아군이 유고 인민군의 여러 막사와 무기고를 장악한 이후 크로아티아에게 유리하게 상황이 흘러갔다. 9월 20일까지 나머지 유고 인민군 막사도 크로아티아군이 점령하면서 유고 인민군과 세르비아 방위군은 고스피치에서 철수했다.
1991년
시베니크 전투(크로아티아어: Bitka za Šibenik) 또는 9월 전쟁(Rujanski rat)은 유고슬라비아 인민군(JNA)이 세르브계 크로아티아인이 세운 크라이나 세르비아인 자치주(SAO Krajina)의 지원을 받아 크로아티아 국가방위군(ZNG)과 크로아티아 경찰이 맞붙은 무력 충돌이다. 이 전투는 1991년 9월 16일부터 22일까지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 기간 중 크로아티아 시베니크시의 북쪽과 서쪽에서 벌어졌다. JNA의 초기 명령은 시내의 병영 포위를 해제하고 달마티아 지역을 크로아티아의 나머지 지역으로부터 고립시키는 것이었다. JNA의 진격은 유고슬라비아 공군과 유고슬라비아 해군의 지원을 받았다.
1991년
자다르 전투(크로아티아어: Bitka za Zadar)는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 당시 1991년 9월 하반기부터 10월 초까지 크로아티아 자다르시 북쪽과 동쪽에서 크로아티아 세르브인 크라이나 세르브인 자치주 의 지원을 받는 유고슬라비아 인민군 (JNA)과 크로아티아 경찰의 지원을 받는 크로아티아 국가방위군 (ZNG) 사이에 벌어진 전투이다. JNA의 초기 명령은 자다르시의 JNA 막사에 대한 크로아티아의 포위를 해제하고 달마티아 지역을 크로아티아 나머지 지역으로부터 고립시키는 것이었으나, 전투 중에 도시 중심부에 있는 자다르항을 점령하는 것으로 명령이 수정되었다. JNA의 진격은 유고슬라비아 공군과 유고슬라비아 해군의 지원을 받았다.
1991년
1992년
호랑이 작전(Operacija Tigar)은 1992년 7월 1일부터 13일 사이 두브로브니크 근처의 크로아티아 및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지역에서 수행된 크로아티아 육군(HV)의 공세였다. 이 작전은 스릅스카 공화국군(VRS)을 도시에서 포포보 평원 쪽으로 밀어내고, 유고슬라비아 인민군(JNA)의 두브로브니크 포위전이 해제된 후 6월 초에 확보된 리예카 두브로바치카를 통한 보급로를 안전하게 확보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작전의 성공은 크로아티아 육군 남부 전선 사령부의 창설과 자칼 작전으로 마무리된 네레트바강 계곡에서의 1992년 5월~6월 대 VRS 작전의 성공적인 결말 덕분에 가능했다.
1991년
스틴거 작전(크로아티아어: Operacija Žalac, 세르비아어: Operacija Žaoka)은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 초기인 1991년 7월 26일에서 27일 사이 크로아티아에 반기를 들고 봉기한 세르브계 크로아티아인 세력이 일으킨 SAO 크라이나가 바노비나 지역의 크로아티아 경찰서를 향해 공격한 일련의 공세이다. 이 공세는 글리나와 코지브로드의 경찰서에 집중되었으며 이 외에도 드보르에서 코지브로드 사이 크로아티아 경찰의 일련의 주둔지를 향했다. 글리나와 코지브로드 외에도 드보르 북부의 스트루가 마을에서는 세르브계 크로아티아 군대가 스투루가 및 인근의 잠라차 마을에서 납치한 크로아티아인들을 인간 방패로 사용하며 격렬한 전투를 펼쳤다.
1991년
1991년
바라주딘 막사 포위전 또는 현지에서의 명칭 바라주딘의 전쟁의 날(크로아티아어: Varaždinski dani rata 바라주딘스키 다니 라타)은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 시기 바라주딘과 그 주변의 유고슬라비아 인민군(JNA) 막사 및 기타 군 시설을 봉쇄하고 점령한 사건이다. 1991년 9월 14일 봉쇄가 시작되어 이후 빠르게 전투로 확대되었고 9월 22일에 유고 인민군 주둔군이 항복하며 끝났다. 이 전투는 크로아티아군이 크로아티아 내 병영에 주둔한 유고 인민군 부대를 고립시키거나 막사를 점령해 초기 크로아티아군에게 필요한 무기를 얻기 위한 시도로 시작된 막사 전투의 한 단락이다.
1991년
회오리바람 작전(크로아티아어: Operacija Vihor)은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 초기인 1991년 12월 11일부터 13일까지 벌어진 크로아티아 바노비나 지역에서의 실패한 크로아티아 육군(HV) 공세이다. 이 공세는 단일 보병 여단을 주력 공격 부대로 투입했으며, 교량 가설 부대와 소수의 탱크 및 병력수송장갑차의 지원을 받았다. 공세 초기에는 거의 저항을 받지 않고 전술적 기습에 성공했으나, 훈련 및 전투 경험의 부족으로 인해 작전 계획, 지원 및 실행이 부실하게 이루어졌다. 공세군은 단기적인 교두보를 확보했으나, 작전 개시 이틀 만에 글리나 북쪽에 배치된 유고슬라비아 인민군(JNA)의 탱크 및 박격포 사격 하에 공황 상태에서 철수했다.
1991년
1992년
Operation Bura, also known as the Mitrovdan Offensive, was a military operation conducted from 8 to 13 November 1992 during the Bosnian War. It took place in the area of Vranjevići near Nevesinje in eastern Herzegovina, where combined Croat–Bosniak forces attempted to break through the defensive lines of the Army of Republika Srpska (VRS). The battle ended in a defensive victory for the VRS, which maintained control of the region and repelled the attacks.
1992년
1992년 – 1995년
1991년
The Battle of Logorište was fought east of Duga Resa and south of Karlovac, Croatia, from 4–6 November 1991 during the Croatian War of Independence, between the Croatian National Guard and the Yugoslav People's Army. The ZNG placed the JNA-held Logorište barracks under a blockade as part of the countrywide Battle of the Barracks, which aimed to pin down JNA units isolated in their bases and force them to surrender weapons and ammunition to the ZNG. However, the JNA garrison broke out from the besieged barracks with part of its stored equipment before the ZNG claimed the vacant base. The breakout was supported by JNA units and SAO Krajina units deployed to lift the blockade of the barracks and other JNA garrisons in Karlovac. A battle ensued as the ZNG attempted to contain advancing JNA units, ending with a ceasefire signed in The Hague.
199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