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지도

임진왜란

시기
1592년 4월 – 1598년 12월
진영
일본 vs 조선·명
전투
30

임진왜란(壬辰倭亂)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한반도에서 조선과 일본 사이에 벌어진 국제전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의 통일을 이룩한 이후 조선을 침공했다. 1592년 동래성 전투를 시작으로 일본군이 조선군을 격파하며 수도 한양이 1592년 6월 함락되었다. 선조는 일본군을 피해 도주했으나,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일본군은 임진강을 건너 1592년 7월 평양성까지 함락했다. 평양성 함락 이후 가토 기요마사는 강원도와 함경도를 침략했고, 조선 조정은 의주로 피난을 간 뒤 명나라에 도움을 요청했다.

출처: 위키백과 — 임진왜란 · CC BY-SA 4.0

전투 30

  1. 1592년 5월

    부산진 전투

    부산진 전투(釜山鎭戰鬪)는 1592년에 발발한 임진왜란 당시 첫 번째 전투이다. 병력, 식량, 무기 등 모든 것이 부족했던 조선군이 패배하고 부산진성은 곧 함락되었다. 부산진성을 점령한 일본군은 동래성으로 진격하였으며, 일부는 남서쪽 다대포진으로 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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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1592년 5월

    동래성 전투

    동래성 전투(東萊城戰鬪)는 1592년 5월 25일(음력 4월 15일) 부산진 전투에 이어 일어난 임진왜란 두 번째 전투로 동래 부사 송상현이 2시간을 버티며 일본군을 끝까지 막아냈으나 결국 전사하고 동래성은 함락되었다. 이 전투에 패배로 대구.상주,김해,밀양,성주,충주까지 함락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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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1592년 5월

    다대포 전투

    다대포 전투(多大浦戰鬪)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초반에 벌어진 전투로 병력, 식량, 무기 등 모든 것이 부족했던 조선군이 완패하고 다대포성은 함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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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1592년 6월

    옥포 해전

    옥포 해전(玉浦海戰)은 1592년(선조 25) 음력 5월 7일(양력 6월 16일), 경상도 거제현 옥포 앞바다에서 이순신이 지휘한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의 도도 다카토라의 함대를 무찌른 해전이다. 이 해전은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이룬 전승신화의 첫 승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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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1592년 6월

    상주 전투 (1592년)

    상주성 전투(尙州城 戰鬪) 혹은 상주 전투(尙州 戰鬪)는 임진왜란 초기 순변사 이일이 상주에서 군사를 모아 일본군과 싸웠으나 패배한 전투로 이후 상주 함락은 충주까지 무너지는 결과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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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1592년 6월

    탄금대 전투

    충주 탄금대 전투(忠州彈琴臺戰鬪)는 1592년 6월 7일 임진왜란 당시 신립이 이끄는 조선군이 충주 탄금대에서 전멸한 전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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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1592년 6월

    적진포 해전

    적진포 해전(赤珍浦海戰)은 옥포 해전과 합포 해전이 있은 그 다음날인 1592년 6월 17일(선조 25년 음력 5월 8일)에 발생했다. 전날의 여세를 몰아 조선 수군은 고성의 적진포에 정박 중이던 일본군 함대를 공격하여 모두 11척을 격침시켰다. 이순신의 1차 출정은 적진포 해전으로 마감하고 다시 본영으로 복귀한다. 이때에는 아직 거북선은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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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1592년 7월

    사천 해전

    사천 해전(泗川海戰)은 1592년 음력 5월 29일 사천에서 일어난 해전이다. 이때 일본 수군 13척이 전멸되었고 거북선이 최초로 실전에 투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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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1592년 7월

    당항포 해전

    당항포 해전(唐項浦海戰)은 1592년 음력 6월 5일(양력 7월 13일)에 이순신이 지휘하는 삼도수군 연합함대가 고성의 당황리 앞바다 당항포에서 왜군을 격파한 해전이다. 유인작전으로 먼 바다로 끌어내어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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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1592년 7월

    임진강 전투 (1592년)

    임진강 방어선은 임진왜란 시기이던 1592년 6월 27일 경기도 연천군 임진강 유역에서 조선의 한양 수복 계획 중 하나였으나, 왜군에게 패배하면서, 임진강 방어에 실패하고, 선조가 의주로 파천하는 계기를 맞게되고 훗날 이 패배는 10만 조선 대군이 1600에 일본군에게 패배하는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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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1592년 7월

    제1차 평양성 전투

    제1차 평양성 전투(第一次平壤城戰鬪) 또는 대동강 전투(大東江戰鬪)는 임진왜란 중의 한 전투이다. 전투의 결과로써 일본군은 공격대상인 평양성을 점령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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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1592년 7월

    당포 해전 (1592년)

    당포 해전(唐浦海戰)은 1592년(선조 25년) 7월 10일(음력 6월 2일) 전라좌수영 및 경상우수영의 연합함대가 지금의 경상남도 통영시 당포 앞바다에서 왜선 21척을 격침시킨 해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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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1592년 8월

    한산도 대첩

    한산도 대첩은 1592년 8월 15일에 발생했다. 조선의 제독 이순신의 함대는 일본 함선 약 100척을 격파하고 일본의 남해안 해상 작전을 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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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1592년 8월

    영원산성 전투

    영원산성 전투(領願山城戰鬪)는 임진왜란 초기 원주 목사 김제갑이 강원도로 쳐들어오는 왜군에 대항해 영원산성에서 벌인 항전으로 군민 모두가 항전하여 시간을 벌었기 때문에 강원도 지역 중 유일하게 원주 백성들만이 무사히 대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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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1592년 8월

    제2차 평양성 전투

    제2차 평양성 전투(第二次平壤城戰鬪)는 임진왜란 중 발생한 전투이다. 평양성이 함락된 후 의주에 피란하던 선조는 여러 차례 명나라에 사신을 파견해 원군을 요청하였고 명나라 황제 만력제는 요동 부총병이자 당시 명나라에서 이름난 장수였던 조승훈을 우군 부총병으로 임명하고 3000명의 군사를 주어 조선의 명나라 1차 원군으로 파견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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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1592년 9월

    청주 전투 (1592년)

    청주 전투(淸州戰鬪) 또는 청주성 전투(淸州城 戰鬪), 청주성 싸움은 임진왜란 당시 최초로 조헌이 이끄는 의병과 영규가 이끄는 승병이 연합하여 전투를 치러 승리한 전투로 이 전투에서 청주성을 탈환했고 이후 제2차 금산 전투로 이어졌다. 지금도 금산에 가면 7백의총과 기념관을 통해 의병들의 애국심과 기개를 느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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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1592년 10월

    부산포 해전

    부산포 해전(釜山浦海戰)은 1592년 10월 5일(음력 9월 1일), 부산포에 정박한 일본군 함대와 대립한 전투이다. 이 전투에서 녹도만호 정운이 전사하였고, 일본군은 100여 척의 함선을 잃었다. 이 전투 후 일본군은 더 이상 적극적인 해상 작전에 나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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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1592년 11월

    진주대첩

    진주대첩(晋州大捷)은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에서 조선과 일본 사이에 벌어진 전투로, 조선군의 승리로 끝났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남도를 장악할 본거지이자 전라도 침입의 교두보 역할을 해낼 요충지가 바로 진주성이라고 간주하고 공략을 명령했다. 1592년 11월 7일(음력 10월 4일) 일본군은 군사 3만명을 이끌고 진주성을 포위하였다. 성내에는 진주 목사 김시민을 위시한 관군 3,800여 명과 백성이 합세해 결전을 준비했고, 성외에서는 곽재우가 이끄는 경상도 의병들이 일본군을 배후에서 견제하고 있었다. 하루 간의 전투 끝에 일본군은 진주성을 함락하지 못하고 군을 물렸으며, 전투 과정에서 조선군과 일본군에 큰 피해가 발생했다. 이 전투로 일본군이 호남 지방을 점령하지 못하면서 전체적인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되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한산도 대첩, 행주대첩과 함께 진주대첩을 임진왜란 3대첩으로 부르며 기리고 있고, 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시민은 사후에 충무공으로 추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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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1593년 2월

    벽제관 전투

    벽제관 전투(碧蹄館戰鬪)는 1593년 2월 27일(음력 1월 27일) 임진왜란 중 벽제관(현재의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 일대)에서 일어난 조명연합군과 일본군의 전투이다. 이 전투의 패배로 인해 권율에 행주산성이 표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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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1593년 2월

    제4차 평양성 전투

    평양성 포위전은 명나라-조선 연합군과 고니시 유키나가 휘하 일본 제1 사단이 싸운 군사적 충돌이었다. 이 전투는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1593년 2월 8일 밤 잔여 일본군은 평양시에서 성공적으로 퇴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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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1593년 3월

    행주대첩

    행주대첩(幸州大捷)은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에서 권율이 지휘하는 조선군과 백성들이 일본군과 싸워 크게 이긴 전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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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1593년 7월

    제2차 진주성 전투

    제2차 진주성 전투(第二次晋州城戰鬪)는 1593년 7월 20일(음력 6월 22일)부터 같은 달 27일(음력 6월 29일)까지 진주성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1593년 전쟁이 휴전기로 접어들면서 명나라와 일본 사이에 강화회담이 있었는데 그 결과 일본군은 북부 및 수도권 지역에서 철수, 남해안까지 물러나게 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 과정에서 일본군 전군에 진주성을 공격할 것을 명령한다. 이는 강화협상을 위한 무력시위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침략 첫 해에 가장 큰 패배를 당했던(제1차 진주성 전투) 진주성에 대한 보복의 성격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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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1597년 8월

    칠천량 해전

    칠천량 해전(漆川梁海戰)은 1597년(선조 30년) 8월 27일 칠천도 부근에서 벌어진 해전으로 이 전투에서 삼도수군통제사 원균 등이 도주 중 전사하며. 칠천량 해전의 패배로 조선수군은 대부분 궤멸된다 이 전투는 한국사 5대 패전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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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1597년 9월

    남원 전투

    남원 전투(南原戰鬪) 또는 남원성 전투(南原城戰鬪)는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 당시 일본군이 전라도 남원성을 공격해 조명연합군과 벌인 전투로, 조명연합군뿐만 아니라 각지의 의병장들과 군민들까지 합세해 전투를 치렀으나 결국 패배해 모두 살해당하고 지휘관 이복남은 자결하였다. 남원에 함락은 훗날 황석산성에 비극으로 이어진다. 그 뿐만 아니라 전주성까지 함락되는 비극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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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1597년 10월

    명량 해전

    명량 해전(鳴梁海戰) 또는 명량 대첩(鳴梁大捷)은 1597년(선조 30) 음력 9월 16일(양력 10월 26일) 정유재란 당시 조선 수군이 이순신 장군의 지휘 아래 일본 수군의 대규모 함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전투이다. 조선은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이순신이 모함으로 파직되고 원균이 지휘를 맡아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하면서 제해권을 상실한 상태였다. 이에 선조는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했으나, 계급을 낮춰 지휘 체계의 혼란이 발생하였다. 당시 조선 수군은 전선이 12척에 불과했으나, 이순신은 “아직도 전선 12척이 남아 있나이다”라는 결의로 수군 재건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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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1597년 10월

    직산 전투

    직산 전투는 정유재란 기간 중 1597년 10월 16일 명나라와 일본군 사이에 벌어진 군사적 충돌이다. 이 전투는 양측 모두의 철수로 끝났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한성에 가장 가까이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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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1598년 10월 – 1598년 11월

    왜교성 전투

    왜교성 전투(倭橋城戰鬪)는 정유재란에 벌어진 조명연합군과 일본군이 격전한 전투며 이 전투에 패배는 훗날 7년의 전쟁을 끝내는 계기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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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1598년 10월 – 1598년 11월

    Second siege of Ulsan

    The allied army, number 29,500 men, laid siege to Tosan near Ulsan in late October. The fortress was too heavily fortified to attempt an assault, however a series of engagements did occur around the area, resulting in more than 2,000 Japanese casualties. Allied forces lifted the siege on 2 November, and Katō Kiyomasa's men departed for Japan shortly afterward. Hachisuka Iemasa and Kuroda Yoshitaka were reported by Nagataka Fukuhara for not pursuing the allied army, which incurred the wrath of Toyotomi Hideyos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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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1598년 11월

    사천성 전투

    사천성 전투(泗川城戰鬪)는 1598년 10월, 조선 경상도 사천 사천선진리성에서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가 인솔하는 일본군 7천 명이 약 4만 명의 조명연합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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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1598년 12월

    노량 해전

    노량 해전(露梁海戰)은 정유재란 당시 1598년 12월 16일(선조 31년 음력 11월 19일) 이순신을 포함한 조명 연합수군이 경상우도 남해현 노량해협에서 일본의 함대와 싸운 전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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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앞뒤 사건

  1. 1377년직지 인쇄 (현존 최고 금속활자본)
  2. 1392년조선 건국
  3. 1443년훈민정음 창제
  4. 1592년 4월 – 1598년 12월임진왜란이 페이지
  5. 1597년명량 해전
  6. 1636년 – 1637년병자호란
  7. 1639년에도 막부의 쇄국

이 땅을 다스린 나라

역사 국경 데이터(Cliopatria)에서 이곳이 속한 나라입니다. 연도는 데이터 간격(몇 년~100년)만큼 대략적입니다. 누르면 그해 지도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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